1.12년 남짓 참아온 고토 토오루 씨

가족의 배후에 강제개종꾼
감금으로 극도로 쇠약 체중은 반감

「여기 오기쿠보에서 저는 12년 5개월 감금되었습니다」. 5월 하순 일요일, 도내·오기쿠보 역 앞에서 휴대용 마이크를 잡은 도내 거주의 고토 토오루 씨 (45)가 호소했다. 「이중으로 잠궈진 맨션의 일실에서 항상 두 명에서 네 명에게 감시되어 운신도 못했다. 이런 비도의 사실을 국민이 알아주길 바란다」.

도쿄·JR오기쿠보 역 앞에서 한 손에 휴대용 마이크로 납치-감금의 비도를 호소하는 고토 토오루 씨=5월 24일
젊은 여성은 받은 비라를 뚫어질듯이 보고 있었다.

고토 씨는 지금까지 두 번 납치-감금되었다. 그 중 두 번째는 1995년, 감금 장소를 몇 번이나 이동하여, 이 오기쿠보에 있는 맨션에서는 약 10년 남짓 갇혀 해방될 때까지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맨처음 감금은 87년, 고토 씨가 어느 종합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23세 때였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회)에 입신한 그에 대해 전 신자였던 고토 씨의 형이 부모를 설득, 집요하게 탈회를 강요했다. 호텔이나 아파트의 일실에 가두어 외부 환경을 차단하고 개종을 강요하는 방식은 형의 경우와 같았다. 하지만, 이 때는 일순의 틈을 보고 도망쳐, 난을 피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95년 9월 11일의 일이었다. 니시토쿄시의 자택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있던 고토 씨를 향해 아버지가 「토오루,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순간 식탁을 둘러싸고 있던 부모와 형, 여동생, 그리고 형수 등 가족의 분위기와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형과 아버지가 양쪽 겨드랑이를 끼고 끌고 가면서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웨건 차에 밀어 넣었다. 뜰에 샛길이 있었는데 도주 경로를 끊으려는 듯, 남자가 서 있었는데, 강제개종꾼의 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도착한 곳은 니가타 시내의 맨션의 일실로 안에서 자물쇠로 채운 현관 도어. 창도 모두 안쪽에서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는데, 형은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이 환경도 이대로다」고 했다.

이 때, 니가타에 있는 니이즈복음기독교의 마츠나가 야스모토 목사가 와서 고토 씨에게 성서의 이야기와 통일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이런 기회가 없을테니, 차분히 생각하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납치-감금된 가운데 일방적으로 철저히 주입하는 말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97년 6월에는 오기쿠보로 옮겨져 맨션의 일실에 감금되었지만, 잠궈진 상황이나 감시가 하루종일 붙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통일교회로부터 「직업적 탈퇴꾼」이라 불리는 미야우라 ?·회사 사장이 전 신자와 사원 5,6명을 데리고 와 고토 씨를 둘러싸듯하여 탈회 설득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토씨는 전 신자에 대해 「여러분은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감금하는 것 자체가 범죄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부당한 감금에 대한 항의입니다」라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고토 씨는 강한 항의의 표시로서 30일간의 단식을 실시한다. 그러나 단식이 끝났지만, 약 70일간에 걸쳐 하루 세 번 작은 공기로 약간의 미음과 1리터의 포카리스웨트만 먹는 날이 이어졌다. 사실상 "식사 제재" 상황이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몰래 냉장고에서 조미료를 꺼내 먹으려 했지만, 발견되어 조미료를 전부 감춰 버렸다. 쓰레기 통에서 당근 껍질이나 양배추 심을 꺼내 먹는 것도 발견되어 숨겨 버렸다.

(「종교의 자유」취재반)


전국납치 감금 강제 개종 피해자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