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번 납치된 코바야시 소이치로 씨

「가족 문제」라고 경찰은 대처하지 않아
5중 열쇠, 판자부착된 창

대학생이었던 1992년에 통일교회에 입교한 코바야시 소이치로 씨(37)는 세 번이나 납치되어 신앙 포기를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 「장절한 사건이었다」 당시를 가끔 생각한다고 한다.

맨처음 납치는 같은 해 11월말. 가족과 함께 자고 있던 코바야시 씨는 강제로 차에 실려 토쿄 우에노에 있는 위클리 맨션으로 끌려 갔다. 어떻게든 도움을 청하려고 계속 큰소리를 질러 댔다.

잠시 후 인근의 누군가가 통보했는지, 경찰관과 기동대 등 약 200명이 맨션으로 몰려 왔다. 그것을 본 코바야시 씨는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가 「가족 문제」라고 하는 이야기로 경찰관 등은 군말없이 돌아갔다.

「감금되어 있는데,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왜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 방에서 나가는 그들을 보며, 코바야시 씨는 큰 쇼크를 받았다. 그런데도 단념하지 않고 저항을 하자, 관리인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니 나가 달라」고 하여 난을 피했다.

그리고 3년 후, 코바야시 씨는 다시 납치 당하는 변을 당했다. 부모와 같이 타고 있던 차가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또 납치 되는가 하고 몸서리쳤다.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지만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또 감금 장소에 예정된 맨션 가까운 곳에서 틈을 보고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부모를 믿는 마음으로 「두 번이나 실패하였는데 세 번은 없겠지」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나 코바야시 씨의 생각과는 달리 2년 후의 4월, 세 번째 납치되었다. 이번에는 회사로 향하던 도중에 노상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강제로 차에 끌려 들어갔던 것이다.

「납치입니다. 도와줘요!」. 코바야시 씨는 있는대로 소리를 쳤다. 통근 시간에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서 바로 경찰차가 달려들어 근처 경찰서까지 데리고 갔지만, 또다시 「가족 문제」라고 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버렸다.

코바야시 씨가 도착한 곳은 군마현 오타시의 맨션이었다. 방안은 언뜻 본 것만으로도 이상함을 알았다. 작은 자물쇠와 다이얼식 등의 자물쇠가 5중으로 잠긴 문. 코바야시 씨가 있던 방에서 현관까지 갈 수 없도록 개조된 도어, 판자로 막아 밖을 볼 수 없는 창.

약 2개월 후, 일본 기독교단 오타 하치만교회(당시)의 「시미즈 요시오」라고 하는 목사가 방으로 방문하여 통일교회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해 왔다. 오랜 감금으로부터 심신 모두 한계 상황이 되어 혈뇨가 나왔지만, 시미즈 목사나 친척 등은 병원에 가는 것도 좀처럼 용납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목사의 허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힘없이 말했다.

반년이 지나자 굳게 잠겨 있던 5중 열쇠가 떼어지고 있었다. 11월 하순 한밤중, 누구도 보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탈출을 생각하고 맨션에서 빠져 나왔다. 몇 개월이나 집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빨리 움직일 수 없었지만,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강한 힘을 느끼며, 토쿄까지 도망쳐 올 수 있었다. 오는 동안 줄곧 「납치라는 비인도적인 짓은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세 번이나 납치된 코바야시 씨는 그 후 부모의 모습을 알고 싶어서 7년 후 부모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부모는 「사과하고 싶지만, 사과할 수 없다…」하는 고뇌에 찬 목소리만 들려온다. 부모로서 주위에 유도되어 저질렀다고 하는 원통함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코바야시 씨 자신도 슬프다. 지금 코바야시 씨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어떤 종교라도, 서로 인정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고.

(「신앙의 자유」취재반)


전국납치 감금 강제 개종 피해자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