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노조에 마키토 씨

3층에서 뛰어 내려 탈출
한동안 하반신불수라는 선고받아

도쿄 미타카에 사는 노조에 마키토 씨(49)의 등뼈 맨 아래 제1요추가 부셔져 있다. 납치·감금된 곳에서 탈출할 때 당한 부상의 후유증이다. 그로 인해 신장은 174센치미터에서 171·5센치미터로 약 3센치미터나 줄었다.

picture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한 납치·감금 피해자가 더 이상이 없기를 강하게 호소하는 노조에 마키토
노조에 씨가 납치·감금된 것은 1992년 9월 중순이다. 이미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의 생각은 여러 모습으로 떠오른다. 오랫만에 기독교 목사였던 어머니에게 귀성했을 때였다. 거기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친척들. 갑자기 양 팔을 잡아 끌고 가듯하여 강제로 차에 실렸다. 힘으로 뿌리치려고 했지만 많은 수에 둘러쌓여 전혀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엄청난 공포심이 몰려왔다」.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데리고 간 곳은 어느 맨션의 일실. 어머니의 집이 있던 사이타마현 오사토군 요리이마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노조에 씨는 지금도 정확한 장소를 모른다.

방안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이라는 창은 판자로 막혀 있었고, 입구의 도어는 안쪽에서 비밀번호로 잠궈져 있었다. 말하자면 밀실상태였다. 그렇게 장치된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니 「몰리고, 마음까지 닫혀 절망적」이 되었다.

며칠 지나자 오미야 복음기독교회(현재 사이타마 복음기독교회)의 사카시타 쇼타로 목사가 왔는데, 이후 이 목사가전 신자를 자주 데리고 와서, 그들과 같이 통일교회 비판을 되풀이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고 싶다」. 사지에서 활로가 보이는 것 같았다. 노조에 씨는 일부러 신앙을 버린 것처럼 가장하는 "위장 탈퇴"를 시도했다. 반발하던 태도를 다잡고, 점잖게 이야기를 들었다. 태도가 바뀌었으므로 가족은 안심했는지, 창에 붙은 판자도 떼내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노조에 씨는 「언제 창으로 도망갈까」하고 살폈다. 어느날 밤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문뜩 느꼈다. 언제나 누군가가 뒤따라와 일을 보고 있을 때도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살며시 창을 열고 베란다로 나왔다. 그대로 난간 위에 서서 각오를 하고 3층에서 뛰어 내렸던 것이다. 「해냈다!」고 생각한 순간, 정신을 잃었다. 몇 시간 후에 의식을 되찾았을 때 이미 날이 새어가고 있었다.

「빨리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일어서려고 했을 때, 허리에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통증이 느껴졌다. 뛰어 내렸을 때 허리를 다친 것 같은데, 일어설 수도 없었다.

노조에 씨는 아픔을 참으면서 감금 장소 주변의 음침한 수풀 속으로 기어갔다. 발견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과 아픔으로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간신히 도로로 나가 우연히 지나가던 택시를 타고 동경의 자택에 도착했다. 23일간의 감금에서 해방된 아침이었다.

하지만, 탈출할 때 제1요추가 깨어진 것을 알았다. 의사로부터 「재생 불가능. 하반신불수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우러나오는 해방의 기쁨이 더 컸다고 한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던 다리는 일주일 후, 조금씩 움직이고, 3개월간 재활을 계속하여 간신히 평상시와 같은 움직임을 되찾았다. 담당 의사도 「기적이다」고 놀랐다고 한다.

노조에 씨는 기독교 목사였던 어머니로부터 감금되었던 것에 대해 지금도 강한 분노와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아내와 자녀 2명의 가족. 「그 때는 몸과 마음도 완전히 닫힌 상태였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이 고통받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면서,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신앙의 자유」취재반)


전국납치 감금 강제 개종 피해자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