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텔에서 호출

방에서 못 나오게 하며 탈회 설득

고토 씨는 일본대학 건축과 4년이었던 1986년, 도쿄도 네리마구의 아파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가족은 대기업 제지회사의 관리직인 아버지, 전업 주부인 어머니, 고토 씨와 4살 차이로 건설회사에 근무하는 형, 세 살 아래로 단기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까지 다섯이다.

도쿄 JR 오기쿠보 역앞에서 한 손에 휴대용 마이크를 쥐고 납치·감금의 비도를 호소하는 고토 토오루 씨=5월 24일
그 무렵, 통일교회에 입교한 형으로부터 고토 씨와 여동생이 인도되었는데 고토 씨가 1년 정도, 그 후 여동생이 교회활동을 하게 되었다. 원래 형제간에 신뢰관계가 좋았으므로 형이나 교회 사람들의 지도로 두 사람이 교리나 교회의 일상생활에 익숙해져 가는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여, 특히 형은 교회 홍보지에 전도우수자로서 그 활동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해인 87년 5월, 본가에 돌아간 형과 교회 사이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당시 신도를 납치·감금하여 강제로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일이 빈발했다. 그로 인해 고토 씨는 형도 감금되어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걱정하는 한편, 자기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경계했다. 5개월 후인 10월, 갑자기 형으로부터 「할 말이 있으니 와달라」고 하는 전화가 왔다. 형을 만나러 간 곳은 도쿄 신쥬쿠 케이오 플라자 호텔이었다.

고층에 있는 방에 들어가니 거기에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고, 형으로부터 신앙을 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고토 씨는 「아, 이거 강제개종인가」하고 직감하여, 방에서 나가려고 할 때, 갑자기 형과 아버지에게 잡혔다. 반발하면서 「뭘 하는 거예요?」라고 저항하면서 몸부림쳤지만, 두 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알고 보니 어느새 입구의 도어는 나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다음날 호텔에 온 것은 「직업탈회꾼」이라 불리는 미야무라 ?·회사 사장이었다. 전 신자를 거느리고 고토 씨를 앞에 앉혀 두고 통일교회의 교리나 활동을 비판하며 설득하는데, 형은 결국, 이 미야무라 사장이나 전 신자들의 설득으로 통일교회를 탈회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탈회 설득 전문가인 미야무라에게 상담했을 때 지도받은 것이 납치·감금이라고 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고토 씨는 말한다. 형은 원래 정의감이 강하여, 교회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교회를 떠난 다음에는 교회 박멸 주장으로 일변했다. 자신의 동생들을 인도했던 것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으로 인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반대 사명감으로 설득 활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모리야마 사토시 목사가 주재하는 오기쿠보 영광교회(토쿄 오기쿠보)에 미야무라 사장이 드나들며, 모리야마 목사와 탈회설득 활동을 했다. 고토 씨는 그 가까이 있는 아파트 2층에 옮겨져 이 교회로 다니게 되었다. 감시인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틈을 보고 1개월 정도 후에 탈출에 성공하여, 첫번째 감금에서 해방되었지만, 88년 말에는 여동생도 미야무라 사장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탈회설득을 당해 통일교회를 탈회했다.

두번째 납치·감금은 8년 후인 95년 9월 11일이었다. 당시 고토 씨는 교회에서 생활했는데, 가끔 도쿄도 호야시(현·니시토쿄시) 본가에 갈 수게 되기까지 가족과의 신뢰관계도 회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날도 친가에 가서 부모님과 남매, 형수와 저녁 식사를 했는데, 이번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갑자기 아버지가 「토오루,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공포에 질려 몸이 경직된 고토 씨는 아버지와 형에게 양쪽 겨드랑이를 잡혀 끌려 집 앞에 준비된 웨건 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비닐로 된 간이화장실을 내밀었다. 차 안에서 일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굴욕적인 취급을 당했다. 도착한 곳은 먼 니이가타시의 처음 보는 맨션 앞이었다.

(「신앙의 자유」취재반)


전국납치 감금 강제 개종 피해자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