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장탈회 시도

강제개종꾼이 다시 등장

납치된 고토 씨가 감금된 것은 니가타 시내의 낯선 맨션의 6층이었다. 격렬하게 항의하는 고토 씨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가족. 창문 안쪽에는 특수한 자물쇠가 장착되어 있고, 현관 도어는 안쪽에도 자물쇠를 채우는 타입이었다.

도쿄 히비야공원 대음악당에서 600명이 참가한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는 기도 집회」=7월 7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방에서 형은 이렇게 단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이 환경도 이대로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착을 짓는다. 너도 그건 각오해라」.

얼마 지나 가족으로부터 탈회 설득을 의뢰받은 니이즈 복음 기독교회의 마츠나가야스토모 목사가 맨션에 왔다. 「목사 답게 어조는 소프트하고 행동은 신사적. 그러나 거기는 감금이라는 무서운 범죄 행위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본인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마츠나가 목사의 너무나 태연한 태도에 혐오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라고 하는 고토 씨. 마츠나가 목사는 「(고토 씨)가족의 요청이 있어서 이야기했을 뿐입니다」라고 한다.

신앙을 지키고 있는 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위장탈회를 시도하기로 했다.

「신앙을 버렸다」고 인정받으려면 "사진밟기"가 있다. 우선 탈회신고서를 쓴다. 다음에 왜 통일교회에 속았는지, 그것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자신의 마음의 궤적을 수기로서 쓴다. 그것을 마츠나가 목사가 체크한다.

형은 당시, 도쿄에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1~2주에 한 번 정도 와서 안색을 살피고 간다. 하지만 첫번째 납치·감금 때 탈출을 도모한 적이 있어서 해방시키는데 신중을 기하게 되었는지, 그 후에도 2년간, 교착상태가 계속되었다. 결국 그 사이 한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이 밀실화한 방에서 지내니 답답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97년 6월에는 감시를 계속하던 중에 아버지가 암으로 죽었다.

「매우 쇼크가 컸고, 울쩍했다. 그러나 자유를 얻으려면 이대로 위장탈회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하고 고토 씨는 지난날을 상기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감금장소를 도쿄 오기쿠보로 이동했다. 니가타 맨션에서 고토 씨는 웨건 차에 실렸지만, 거기에 동원된 것은 전 신자인 남성 운전수를 포함해 7명이었다.

도쿄 호야시의 본가에서 어른들에게 둘러쌓여 부친의 유해와 대면한 후, 오기쿠보 역 부근의 맨션으로 옮겨졌다. 거기에서 반년 정도 있었고, 그 후 약 10년간 지내게 되는 오기쿠보 플라워홈이라는 맨션 804호실로 옮겨져, 계속 감금되었다. 97년 12월이었다. 꾹 참으며 해방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계속 신앙을 버린 체 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위장 탈회했던 일을 가족에게 말했다. 「위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이상, 앞으로 위장은 통용되지 않는다. 정면으로 싸워 나간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당시의 비통한 결의를 말한다.

매일 저녁 6시경이 되면 전 신자를 5~6명 거느린 강제개종꾼으로 불리는 미야무라 사장이 고토 씨와 대면하여, 교회나 교리 비판을 반복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여기에서 나갈 수 없어」 「만약 자신의 아이가 통일교회를 그만두지 않으면 집에 광 같은 감옥을 만들어 죽을 때까지 가둔다」고 했다. 한편 전 신자 한 사람이 「고토 씨, 당신,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해왔다」고 하며 퍼질러 앉아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면서 곤혹스러워 하니, 이번에는 「무슨 말이야」하고 돌변하여 아주 험악한 얼굴로 옆에 있던 녹차를 얼굴에 끼얹기도 했다.

많을 때는 10명 정도가 들이닥쳐 트집을 잡는데, 그에 대해 뭔가를 반론하면 「바보」 「바보」 「악마」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미야무라 사장은 「너가 아버지를 죽였다」라고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것 같은 말을 했다.

밀실에서 취조와 같은 것이 연일 4시간 정도 반복되었다. 「괴롭웠다……,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고토 씨는 말한다. 98년 1월부터 9월까지 고토 씨는 어느 책 귀퉁이에 바를 「정」을 쓰면서 미야무라 사장이 다녀간 회수를 세었는데 73회에 이르렀다.

취재반은 미야무라 ? 사장에게 전화했지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신앙의 자유」취재반)


전국납치 감금 강제 개종 피해자의 모임